진진아트-영상 낭송시♣

흰바람 벽이 있어-백석 낭송:황태교 영상:JinJinArt

꿈그린 2010. 8. 20. 09:53

 

 

출처 http://cafe.daum.net/jinjinart   

 

 

 흰 바람벽이 있어

 

시 : 백석 
낭송:황태교

 
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
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

 

이 흰 바람벽에
희미한 십오 촉( 燭 )  전등이
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

 

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
어두운 그림자를 쉬고

 

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
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
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

 

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

이 흰 바람벽에
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

 

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
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
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
배추를 씻고 있다

 

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
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
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
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
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
저녁을 먹는다

 

벌써 어린것도 생겨서
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

 

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
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
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

 

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
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

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


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
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

 

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
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하며 주먹질을 하며
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

 

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
사랑하는 것들은 모두 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
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  사랑과 슬픔 속에
살도록 만드신 것이다

 

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
당나귀가 그러하듯이

 

그리고 또 '프랑시스 잼'과 '도연명'과
'라이너 마리아 릴케'가 그러하듯이